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펄 벅 (문단 편집) == 중국 관련 == 펄 벅은 중국을 떠나온 뒤 중국에 꼭 다시 가고 싶어했으나, [[마오쩌둥]] 정권 하의 공산주의 중국에서 펄벅은 제국주의의 시각으로 중국을 왜곡한 작가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입국이 불허되었고, 죽기 몇년 전 [[리처드 닉슨]]의 중국 방문 때도 동행이 거절되었다. 미완성 유작도 대지 4부인 붉은 대지로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을 그리며 쓰다가 끝내지 못하고 1973년 3월,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묘사를 들여다 보면 펄 벅은 특별한 사상적 주장 없이, 그저 중국 하층민들의 생활을 핍진할 정도의 현실적인 묘사로 (거기다 다분히 동정과 애정을 가진 필체로) 그려 나갔을 뿐이다. 근데 정작 펄 벅을 비난한 [[루쉰]]은 작중에서 같은 중국인들을 미개하고 타락한 사람들로 그리며 각성을 촉구하고 있고, 그 중국인을 피해망상에 찌든 미치광이나 정신병자([[아Q]]는 약과다)로 묘사하며 아주 가차없이 비난했는데도, 마오쩌둥을 비롯한 정치인이나 중국의 지식인이나 문학가들은 그를 다른 부분에 대해서 비판했으면 했지 중국인에 대해서 폄하했다며 까진 않았다. 이는 당시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상당수 동양인들이 "까도 우리가 까!"라는 식으로 다른 인종이 동양인을 조금이라도 안 좋게 묘사하는걸 못 견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굳이 동양인이 아니더라도, 미국만 봐도 흑인이 흑인 보고 니그로라며 비하어를 쓰는 건 농담으로 받아들이지만, 백인이 흑인 보고 니그로라고 하면 바로 주먹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펄벅은 비하어를 쓴 것도 아니고 하층민 묘사했다고 이러니 좀 억울할 법도 하겠지만. 거기에 그 시기 이소룡이 중국인 카뮤니티에서 소외된 것이 백인과 흑인한테 중국무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벅에 대한 이런 평가를 정착시킨 인물 중 하나가 [[루쉰]]인데, 사실 이건 펄 벅의 작품을 죄다 [[중역]]판으로 읽어서 생긴 오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북미의 중국인 작가 중에서도 의외로 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중국]]에서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펄 벅의 작품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진 지 오래다. 중국 매체가 선정하는 세계 명작 추천서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영미 문학 중에 펄벅의 대지는 항상 목록에 오른다. 청 말기 - 군벌 난립 - 혁명기를 다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지 3부작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지(소설)]] 항목이나 [[루쉰]] 항목에도 구구절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 이 문제는 펄 벅 자신이 가진 복잡한 정체성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자서전에서도 밝힌 것처럼 젊은 시절의 펄 벅은 중국인에 속할 수도, 미국인에 속할 수도 없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 문제 때문에 고민했고, 펄 벅 자신이 작가로서 불후의 명성을 쌓아감에 따라 이는 단순히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넘어 펄 벅이라는 역사적 위인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 관한 문제가 된 것. 말하자면 서구 문화권(유럽+미주)에서 펄 벅은 동양의 사회와 문화, 문명을 소개하는 대변인이었지만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펄 벅 역시 백인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으며 펄 벅 자신도 청소년기의 반 백인 테러에서 인식한 것처럼 중국에서 성장했지만 중국인이 될 수는 없던 자신을 인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펄 벅의 자서전을 보면 동양에 대한 비하적 편견에 사로잡힌 서양인들을 사정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양(특히 자신이 성장한 중국)에서 뭔가 참혹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이 미개한 동양놈들!' 이라고 화를 냈다가 잠시 후 왜 그런 차별적인 생각을 했는지 크게 후회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상기한 [[유일한]] 회장과의 인연은 배우자인 호미리 선생과의 친분도 의미한다. 중국계 미국인과 미국계 중국인이 될 뻔한 미국인의 교류가 그러한 경계인을 체험한 그들만의 고민을 서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펄 벅은 이런 소신 때문에 기나긴 기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국민당 정권이 패배하자 공산주의의 손에 중국을 버려둔 기독교 선교사들, 기독교 문명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난했고, 이 결과 엉뚱하게도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펄 벅을 공산주의에 끌어들이려 하는가 하면 [[FBI]]는 그녀를 비애국적 빨갱이로 간주하며 탄압했다.[* 정작 펄 벅 본인은 공산주의를 중국과 그 전통 가치를 오염시키는 외국 사상으로 보아 비난했다.] 그러나 닉슨 정권에서 중국과의 해빙 무드가 조성되자 펄 벅의 혜안이 조명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도 펄 벅의 평가는 급상승했다. 펄 벅은 '펄'에서 딴 채진주(사이쩐추)라는 중국 이름을 가졌고, 생가는 보존되어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묘비에도 중국 이름이 새겨졌을 정도.[* 중국의 경우 펄 벅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바이두 백과나 위키백과의 항목 이름도 전부 '''중국 이름'''으로 되어 있다.] 현재 펄 벅의 소설은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동정적 여론을 조성해 대전기, 전간기의 대중국 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동양적 가치를 서양적 가치와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 보면서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던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깨는 동시에 중국적, 기독교적 [[페미니즘]] 문학에 크게 공헌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분류:미국의 소설가]][[분류:미국 여성 작가]][[분류:미국의 장로회 신자]][[분류:노벨문학상 수상자]][[분류:1892년 출생]][[분류:포카혼타스 카운티(웨스트버지니아) 출신 인물]][[분류:1973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